전체 글51 도가니 [ 연출의선택, 캐스팅, 영화 ] 충격적인실화 한 편의 영화가 법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저는 도가니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그 질문에 선뜻 고개를 끄덕이지 못했습니다. 2011년 개봉 직후 경찰 재수사, 국회 입법, 학교 폐쇄까지 이어진 실제 결과를 알고 난 뒤에도, 영화관을 나서는 발걸음은 여전히 무거웠습니다.현실이 영화보다 무서울 때, 연출의 선택황동혁 감독이 도가니를 연출하면서 가장 먼저 결정한 건 배경 설정이었습니다. 사건이 실제로 일어난 광주광역시 대신 가상의 도시 '무진'을 택했는데, 무진이란 '안개가 짙은 나루'를 뜻하는 이름입니다. 광주의 옛 이름이 무진군이었다는 사실과 연결되면서, 이 도시는 처음부터 현실과 허구의 경계 어딘가에 걸쳐 있는 느낌을 줍니다.도입부의 고라니 충돌 장면은 원작 소설에 없는 설정이에요. 감독이 직접 추가.. 2026. 5. 2. 인턴 [ 옆에있어준다는것, 따뜻함, 비판 ] 앤 해서웨이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그냥 가볍게 볼 생각이었습니다. 퇴근하고 피곤한 날, 부담 없이 틀어두기 좋은 영화라고 들었거든요. 그런데 다 보고 나서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위로받은 건지 불편한 건지 잘 모르겠는 그 기분, 그게 이 영화를 계속 생각하게 만드는 이유인 것 같습니다.인턴, 옆에 있어준다는 것영화 인턴은 창업 1년 된 의류 쇼핑몰 CEO 줄스 오스틴과 은퇴한 70세 시니어 인턴 벤의 이야기입니다. 두 사람은 나이도, 살아온 방식도, 일하는 속도도 전혀 다릅니다. 그런데 제가 유독 오래 붙잡혀 있었던 장면은 화려한 성공 스토리가 아니었어요. 벤이 줄스 곁에서 아무 말 없이 그냥 앉아 있는 장면들이었습니다.직장 생활이 바쁘고 복잡할수록 뭔가를 해결해주는 사람보다 그냥 옆에 있어주는 사람이 훨.. 2026. 5. 1. 영화 국가대표 [ 감동, 개연성, 서사 ] 실화 2009년 개봉한 영화 국가대표는 800만 관객을 동원했습니다. 스포츠 영화 장르에서 이 수치는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은 기록입니다. 저도 처음엔 그냥 유쾌한 스포츠 영화겠거니 하고 봤는데, 막상 보고 나서 한동안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어요. 흥행 수치 뒤에 가려진 것들이 조금씩 눈에 들어왔기 때문입니다.국가대표 캐릭터 도구화, 감동의 대가영화의 등장인물들은 입양아, 약물 복용 전력이 있는 선수, 다단계 피라미드 판매원 등 자극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인물 설정을 영화 서사론에서는 캐릭터 아키타입(character archetype)이라고 부르는데, 여기서 아키타입이란 관객이 즉각적으로 감정 이입할 수 있도록 특정 원형적 속성을 부여한 인물 유형을 뜻합니다. 문제는 이 영화가 각 캐릭터의 아키.. 2026. 4. 30. 파반느 [원작소설, 외모차별, 상징 ] 넷플릭스영화 넷플릭스 영화 파반느를 보고 나서 박민규 작가의 원작 소설 줄거리를 훑어보는데, 단순한 로맨스로 넘기기엔 걸리는 부분이 너무 많았습니다. 감동과 비판이 동시에 밀려오는 작품이었고, 그 복잡한 감정을 정리해보고 싶어 이 글을 씁니다.파반느 원작 소설의 서사 구조와 액자 내러티브이 소설이 독특한 이유는 서사 구조(narrative structure) 자체에 있습니다. 여기서 서사 구조란 이야기가 전개되는 방식과 틀을 의미하는데, 박민규 작가는 단순한 시간 순서 대신 액자 내러티브(frame narrative)를 선택했습니다. 액자 내러티브란 이야기 안에 또 다른 이야기가 담기는 방식으로, 바깥 이야기의 화자가 안쪽 이야기를 전달하는 구조입니다.소설 전반부에서 독자는 35살 작가인 '나'가 19살 시절을 회상.. 2026. 4. 29. 건축학개론 [ 장면, 첫사랑, 감정 ] 국민첫사랑 수지 한국 멜로 영화 역대 흥행 1위. 저도 처음 이 수식어를 보고는 '그 정도야?' 싶었어요. 그런데 다시 보고 나서 오래된 연락처를 뒤적이고 있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좋은 영화냐는 질문과 기억에 남는 영화냐는 질문의 답이 꼭 같지 않다는 걸, 이 영화가 증명합니다.건축학개론 버스 장면이 남기는 것건축학개론영화는 배우배수지를 국민 첫사랑으로 탄생시킨 작품이기도 하지요, 건축학개론은 서울예술대학교 음대생 서연과 건축학과 신입생 승민의 만남으로 시작됩니다. 두 사람이 함께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장면은 대사도, 특별한 사건도 없어요. 그런데 저는 그 장면에서 가장 오래 멈췄습니다. 이어폰 한쪽을 건네는 행동, 나란히 창밖을 바라보는 구도. 일반적으로 영화적 감동은 극적인 대사나 사건에서 온다고들 하지만, 제 경험.. 2026. 4. 28. 영화 인셉션 [ 열린결말?, 개연성, 가리키는것 ] 팽이가 쓰러졌을까, 안 쓰러졌을까. 이 질문이 정말 인셉션의 핵심일까요? 처음 영화관에서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옆에 앉은 친구는 "재밌었다" 한마디 하고 먼저 나가버렸는데, 머릿속에서 뭔가가 계속 돌아가는 느낌이었어요. 팽이처럼요. 그리고 집에 가는 지하철 안에서 괜히 손을 꼬집어봤습니다. 그 정도로 현실 감각을 흔들어놓은 영화였어요.인셉션 열린결말이라는 착각, 그리고 토템의 진짜 역할인셉션 결말을 두고 여전히 "열린결말이다", "아직 꿈속이다"라고 보는 분들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 입장이 꽤 설득력 있다고 느꼈어요.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결말의 해석 방식 자체가 틀렸을 가능성이 높습니다.열린결말이란, 이야기의 결과가 두 가지 이상으로 모두 성립 가능할 때 쓰는.. 2026. 4. 27. 이전 1 2 3 4 5 ··· 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