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인턴 [ 옆에있어준다는것, 따뜻함, 비판 ] 앤 해서웨이

by mini3746 2026. 5. 1.

인턴 포스터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그냥 가볍게 볼 생각이었습니다. 퇴근하고 피곤한 날, 부담 없이 틀어두기 좋은 영화라고 들었거든요. 그런데 다 보고 나서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위로받은 건지 불편한 건지 잘 모르겠는 그 기분, 그게 이 영화를 계속 생각하게 만드는 이유인 것 같습니다.

인턴, 옆에 있어준다는 것

영화 인턴은 창업 1년 된 의류 쇼핑몰 CEO 줄스 오스틴과 은퇴한 70세 시니어 인턴 벤의 이야기입니다. 두 사람은 나이도, 살아온 방식도, 일하는 속도도 전혀 다릅니다. 그런데 제가 유독 오래 붙잡혀 있었던 장면은 화려한 성공 스토리가 아니었어요. 벤이 줄스 곁에서 아무 말 없이 그냥 앉아 있는 장면들이었습니다.
직장 생활이 바쁘고 복잡할수록 뭔가를 해결해주는 사람보다 그냥 옆에 있어주는 사람이 훨씬 드뭅니다. 벤은 조언을 먼저 꺼내지 않아요. 지시가 없으면 기다리고, 눈치를 채면 움직이고, 감정을 눈치채도 먼저 건드리지 않습니다. 그 묵직한 방식이 처음엔 답답해 보였는데, 보다 보면 그게 오히려 줄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었다는 게 느껴졌습니다. 이 영화가 활용하는 서사 기법은 일종의 멘토링 서사입니다. 다만 인턴은 이 구조를 조금 비틉니다. 벤이 줄스에게 뭔가를 가르치는 방향이라기보다, 서로가 서로에게 배우는 쌍방향 관계로 그려진다는 점에서 기존 멘토링 서사와 차별점이 있어요. 여기서 멘토링 서사란 경험이 많은 인물이 젊고 유능한 인물의 성장을 옆에서 지지하는 서사 구조를 말합니다. 단순한 조언자 관계를 넘어 정서적 연대까지 포함하는 개념이에요.
늦은 밤 사무실에 혼자 남은 줄스를 보는 장면이 있습니다. 화면 속 그녀는 분명 유능하고 바쁩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일수록 외롭습니다. 잘하고 있는데도 불안하고, 인정받고 싶은데 표현하지 못하는 그 감각.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어요. 가벼운 코미디 영화에서 그 감각을 이렇게 정확하게 포착할 줄은 몰랐거든요. 실제로 직장 내 정서적 지지가 업무 성과와 번아웃 예방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벤이 줄스에게 하는 게 정확히 그것이에요.

따뜻함 뒤의 불편함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나서 한 가지 질문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 영화가 줄스의 커리어를 정말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있는가, 하는 것이었어요.
줄스는 창업 1년 만에 의류 쇼핑몰을 성공 궤도에 올린 CEO입니다. 그런데 영화는 그 능력을 칭찬하면서도, 동시에 그 능력 때문에 결혼 생활이 흔들린다는 구도를 만들어 놓습니다. 남편 맷은 아내의 성공에 눌려 외도를 저지르고, 줄스는 그것을 감내하고 용서하는 방향으로 결말이 흘러가요. 이 장면을 보면서 불편했던 건, 능력 있는 여성이 성공을 유지하려면 가정의 균열도 어느 정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메시지처럼 읽혔기 때문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줄스가 유리천장을 이미 뚫은 인물로 등장하지만, 영화의 서사 구조 자체가 그녀를 다시 그 천장 아래로 끌어당기려는 힘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내포란 어떤 말이나 글 속에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속에 담겨 있는 뜻을 말합니다. 실제로 국내 여성 관리자 비율은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으며, 여성의 경력 단절은 결혼·출산 이후 특히 두드러지는 현상으로 나타납니다. 영화가 그리는 줄스의 갈등이 단순한 픽션이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유리천장이란 능력이 있어도 성별이나 사회적 편견으로 인해 일정 이상의 위치로 올라가기 어려운 보이지 않는 장벽을 의미합니다. 여성 리더십 논의에서 자주 등장하는 개념이에요.
줄스가 CEO 자리를 내려놓는 것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장면도 오래 마음에 걸렸습니다. 이런 고민은 보통 남편의 외도 이후 자책처럼 느껴질 때 가장 위험합니다. 그녀가 스스로 만들어낸 회사를, 남편 문제 이후 포기를 고려한다는 흐름이 아무리 봐도 자연스럽지 않았어요. 결말에서 회사를 계속 운영하기로 결정하지만, 그 결론이 줄스 스스로의 확신에서 나온 것인지 벤의 설득에 의한 것인지 애매하다는 점도 씁쓸함을 남겼습니다.

위로와 비판 사이

벤의 완벽함도 사실 영화를 판타지처럼 느끼게 만드는 원인입니다. 그는 단 한 번도 실수하지 않고, 모든 상황에서 현명하고 따뜻한 해결사로 등장해요. 현실에서 저런 인물이 존재하기 어렵다는 걸 알면서도, 그 완벽함이 주는 안도감에 기대게 된다는 사실이 오히려 이 영화의 묘한 마력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불편했던 지점들을 솔직하게 정리하면, 여성의 성공이 가정 문제의 원인으로 그려지는 구도, 외도를 당한 쪽이 관계를 지키기 위해 더 많이 양보하는 결말, 줄스의 핵심 결정이 스스로가 아닌 타인의 설득으로 내려지는 흐름, 그리고 벤이 지나치게 이상화된 캐릭터로 설정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이 네 가지가 겹치면서 따뜻한 영화 안에 불편한 전제가 조용히 깔려 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주는 위로는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위로받으면서도 동시에 그 위로의 방식이 조금 마음에 걸렸다는 것, 그 두 감각이 동시에 드는 영화가 사실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지치고 복잡한 날 인턴을 틀어두면 분명 따뜻해집니다. 하지만 다 보고 나서 그 따뜻함이 어떤 전제 위에 세워진 것인지 한 번쯤 생각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 완벽하지 않아도 위로가 되는 영화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위로를 받으면서도 비판적인 시각을 잃지 않을 수 있다는 것. 인턴은 그런 두 가지를 동시에 연습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참고:https://www.youtube.com/watch?v=o9CCosnalHQ


소개 및 문의 · 개인정보처리방침 · 면책조항

© 2026 블로그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