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작비 2억 4,800만 달러, 평점 96점. 수치만 보면 그냥 넘기기 어려운 영화입니다. 저는 원작 소설을 먼저 읽은 독자로서 개봉 소식을 듣자마자 망설임 없이 예매 버튼을 눌렀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인터스텔라 이후 가장 경이로운 우주 SF 영화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원작 소설 팬이 영화 각색을 보며 느낀 것
원작을 먼저 읽고 영화를 보러 갔다면, 아마 저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셨을 겁니다. 기대와 약간의 불안이 뒤섞인 그 묘한 감정 말입니다. 앤디 위어의 소설은 서사의 70% 가까이가 주인공 라일랜드 그레이스의 과학적 추론(scientific reasoning)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과학적 추론이란 관측된 현상을 바탕으로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는 사고 과정을 뜻합니다. 독자는 그레이스의 머릿속에 들어가 수식과 실험을 함께 따라가면서 지적 쾌감을 느끼는 방식이죠.
그런데 영화는 그 방향을 과감히 틀었습니다. 원작에서 그레이스가 기억을 잃고 깨어난 뒤 주변 환경을 논리적으로 분석해 자신이 과학자임을 추론하는 장면이, 영화에서는 라이언 고슬링이 허우적거리다가 "나 똑똑한 사람이었어"라고 내뱉는 한 마디로 압축됩니다. 처음엔 솔직히 실망할 뻔했습니다. 그런데 이 선택이 영화 전체의 방향을 미리 선언하는 것이었다는 걸 보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각본은 마션을 쓴 드류 고다드가 맡았고, 스파이더버스 시리즈로 유명한 필 로드와 크리스 밀러가 연출에 들어왔습니다. 이들이 택한 방향은 과학 퍼즐 대신 버디 무비(buddy movie), 즉 두 존재의 우정을 이야기의 핵심으로 삼는 것이었습니다. 버디 무비란 성격이나 배경이 다른 두 인물이 함께 문제를 해결하며 유대를 쌓는 장르 구조를 뜻합니다. 원작의 지적 긴장감을 기대하고 갔다면 다소 아쉬울 수 있다는 점은 솔직히 인정합니다. 하지만 영화만의 언어로 새롭게 빚어진 이야기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심장을 두드렸습니다.
로키라는 존재가 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든 이유
이 영화에서 로키를 어떻게 느끼셨나요? 저는 솔직히 말씀드리면, 돌멩이 보고 울었습니다. 얼굴도 없고 눈도 없는, 거미처럼 생긴 암석 형태의 외계 생명체에게 그렇게 감정이 이입될 줄은 몰랐습니다.
로키 구현에 사용된 방식은 CGI가 아닌 애니마트로닉스(animatronics)입니다. 애니마트로닉스란 기계 장치와 전자 제어를 결합해 실제로 움직이는 모형 생명체를 만드는 기술로, 쥬라기 공원이나 ET에서 활용된 방식과 같습니다. 디지털로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라 실제로 세트 위에 존재하는 물체라는 사실이, 라이언 고슬링의 반응에서 진짜 감정을 끌어내는 기반이 되었을 겁니다.
관람평 중에 이런 문장이 있었습니다. "같은 인간은 희생을 강요하고, 처음 본 외계인은 희생을 공유했다." 제가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접한 문장인데, 이 한 줄이 영화의 본질을 정확히 짚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레이스가 우주선을 돌리는 그 순간, 그의 얼굴에서 두려움 대신 환한 생동감이 느껴졌습니다. 겁쟁이 소리 듣던 그 사람이 맞나 싶을 만큼. 그 표정이 지금도 머릿속에 남아 있습니다.
그레이스와 로키의 우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립니다. 초반 호흡이 느리다는 점은 취향에 따라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구조는 의도적인 설계입니다. 고립과 감정 축적의 시간이 있어야, 낯선 존재가 등장하는 순간 단순한 조우가 아니라 감정적 폭발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스필버그의 ET도 초반 30분은 외계인 없이 흘러가죠.
라이언 고슬링의 원맨쇼가 가능했던 이유를 아시나요?
라이언 고슬링이 코로나 팬데믹 시절 원작 소설을 읽고 "저 하겠습니다"라며 먼저 손을 들었다는 이야기, 알고 계셨나요? 판권 계약 단계에서 이미 주연 배우가 패키지로 묶여 있었고, 그는 프로젝트가 멈춰 있는 동안 마냥 기다렸습니다. 알면서 기다리는 것, 그것도 재능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직접 극장에서 보면서 놀란 건, 고슬링이 대부분의 장면을 말 그대로 혼자 끌고 간다는 점이었습니다. 상대 배우가 거의 없는 제한적인 세트 공간에서, 믿고 웃고 숨 쉴 실제 파트너 없이 감정을 만들어냅니다. 그런데 과잉 연기도 없고 감정을 억지로 짜내는 느낌도 없습니다. 나른하면서도 예리하고, 비겁한 듯하면서도 결국 해낼 것 같은 그 묘한 안도감을 줍니다.
이 영화가 다른 우주 SF들과 다른 점 중 하나는 공포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는 겁니다. 흔히 우주 영화는 "나가면 죽는다"는 위협을 시각적으로 강조합니다. 하지만 헤일메리는 인류의 멸종 위기라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우주를 향한 경이로움과 호기심을 화면 가득 담습니다. 헤일 메리(Hail Mary)란 원래 카톨릭 기도문의 이름으로, 미식축구에서는 절박한 상황에서 던지는 마지막 한 방을 가리키는 관용 표현이기도 합니다. 그 이름처럼 이 프로젝트 자체가 답 없는 상황에서 던지는 인류의 마지막 시도입니다.
SF 장르에 관심 있으신 분이라면, 출처: RogerEbert.com에서 다양한 SF 영화 비평을 참고하실 수 있습니다. 헤일메리처럼 과학과 감성을 균형 있게 다룬 작품들의 계보를 함께 살펴보면 이 영화의 위치가 더 선명하게 보입니다.
아이맥스로 봐야 하는 이유, 그리고 놓치지 말 것들
극장 선택에서 고민 중이신 분들께 여쭤보고 싶습니다. 좌석 예매 화면에서 아이맥스(IMAX)와 일반 상영 중에 고민하셨나요? 저는 아이맥스로 봤고, 그 선택을 전혀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아이맥스(IMAX, Image MAXimum)란 일반 스크린보다 훨씬 넓은 화면비와 고해상도 영상 시스템을 제공하는 상영 포맷입니다. 쉽게 말해 화면이 더 크고 선명하며, 특별 촬영된 장면에서는 시야 전체를 영화가 채우는 몰입감을 줍니다. 이 영화는 전체 런닝타임 2시간 40분 중 약 3분의 2 가량이 아이맥스 화면비로 촬영되었습니다. 크리스토퍼 놀란 영화보다도 아이맥스 비율이 높습니다.
이 영화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원작 소설을 먼저 읽고 가면 감동이 배가됩니다. 각색의 방향이 이해되고, 남긴 것과 바꾼 것의 의미가 선명해집니다.
- 초반 30분의 느린 호흡을 버텨야 합니다. 그 시간이 후반부 감정 폭발의 토양입니다.
- 엔딩 후 메이킹 필름까지 자리를 지키시길 권합니다. 로키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보면 영화를 보는 내내 느꼈던 감정이 다시 한번 밀려옵니다.
- 아이맥스 상영관을 선택하세요. 우주 유영 장면과 행성 전경 시퀀스는 일반 스크린과 차원이 다릅니다.
아마존 MGM이 예고편에서 외계인 로키를 미리 공개한 것도 전략이었습니다. 이 영화의 정체성은 마션 스타일의 생존 SF가 아니라 인간과 외계 존재 사이의 우정이기 때문입니다. 터미네이터 2가 T800의 선역 설정을 미리 알려줬어도 감동이 줄지 않은 것처럼, 알고 보는 것이 오히려 더 재미있는 영화입니다. 또한 SF 영화의 과학적 고증이 궁금한 분들은 출처: NASA 공식 사이트에서 우주 탐사 관련 자료를 살펴보시면 영화 속 설정들이 얼마나 현실 과학에 기반했는지 비교해보실 수 있습니다.
아껴 먹고 싶다는 말이 있습니다. 끝을 향해 가는 게 싫어서 일부러 천천히 보게 되는 영화.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정확히 그 감정을 느꼈습니다. 원작이 있는 영화인 만큼, 책을 먼저 읽고 극장을 찾으시는 것을 강력히 권합니다. 그리고 아이맥스는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연말 시상식 시즌에 이 영화가 어떤 자리를 차지하게 될지, 지금부터 기대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