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말하면, 저도 처음 인터스텔라를 봤을 때 뭔가 묘하게 공허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주변에서 다들 인생 영화라고 하니까 저도 그렇게 느껴야 할 것 같은 압박감까지 생겼을 정도였는데, 쿠퍼가 23년치 영상 메시지를 한꺼번에 보는 장면 앞에서는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눈물이 났습니다. 이 영화를 두고 과학과 감동 사이에서 제가 실제로 무엇을 느꼈는지, 그리고 일반적으로 완벽한 SF 걸작으로 알려진 이 영화의 허점이 실제로 어느 수준인지 검증해봤습니다.
인터스텔라 과학적 허점, 실제로 얼마나 심각할까
일반적으로 인터스텔라는 물리학자 킵 손(Kip Thorne)이 직접 자문한 덕분에 과학적 정확성이 뛰어난 영화로 알려져 있습니다. 킵 손은 2017년 중력파(Gravitational Wave) 관측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인물로, 중력파란 질량을 가진 천체가 가속 운동을 할 때 시공간에 파동처럼 퍼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이런 최고 권위자가 자문으로 붙었다는 사실이 영화의 신뢰도를 높였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따져보니, 몇 가지 부분은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밀러 행성 장면입니다. 영화에서 밀러 행성 1시간이 지구 시간으로 7년에 해당하는 극단적인 시간 지연(Time Dilation)이 일어납니다. 시간 지연이란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이론에서 비롯된 개념으로, 중력이 강할수록 또는 속도가 빠를수록 그 공간의 시간이 주변보다 느리게 흐르는 현상을 말합니다. 이 정도 수준의 시간 지연이 실제로 일어나려면 행성이 블랙홀의 강착원반(Accretion Disk), 즉 블랙홀 주변으로 빨려 들어가는 물질이 원반 형태로 회전하는 구역 근처에 위치해야 합니다. 그런데 정작 착륙 장면에서 블랙홀은 저 멀리 조그맣게 보입니다. 킵 손 교수 본인도 밀러 행성의 하늘을 가득 채울 만큼 블랙홀이 가까워야 한다고 설명했는데, 놀란 감독은 후반부 연출을 위해 의도적으로 초반에 작게 보이도록 했다고 인정했습니다. 과학적 법칙을 영화적 연출을 위해 타협한 셈입니다.
산맥 높이에 달하는 1.2km짜리 파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파도가 생기려면 조석력(Tidal Force) 행성 전체에 극단적으로 작용해야 하는데, 그 수준이라면 지표면 자체가 화산 폭발과 지각 변동으로 멀쩡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조석력이란 전체 간 중력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힘을 말합니다. 목성의 위성 이오(Io)가 강한 조석력 탓에 태양계에서 화산 활동이 가장 활발한 천체라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영화에서 과학적 허점이 있는 주요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밀러 행성 시간 지연 설정 대비 블랙홀 거리가 지나치게 멀게 묘사됨
- 1.2km 초고대 파도 형성에 필요한 조석력이라면 지표면 자체가 존재 불가
- 지구 출발 시 다단계 로켓 사용 방식과 행성 단독 이착륙 능력 간의 기술력 불균형
- 테서랙트(Tesseract) 내부 5차원 공간 구현은 물리적 검증 불가 영역
상대성이론, 영화가 제대로 담은 것과 그렇지 못한 것
제 경험상, 인터스텔라를 보고 나서 상대성이론에 흥미가 생겼다는 사람이 주변에 정말 많았습니다. 저도 그 중 하나였고, 우주라는 배경 자체가 워낙 판타지적이고 몽환적이라 영화를 보는 내내 신비로움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막상 이론을 찾아보면 영화가 잘 담아낸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이 꽤 선명하게 나뉩니다.
영화가 정확하게 포착한 부분은 블랙홀 가르강튀아(Gargantua)의 시각적 묘사입니다. 블랙홀 주변의 강착원반이 중력 렌즈 효과(Gravitational Lensing)에 의해 빛이 휘어 보이는 모습을 표현했는데, 중력 렌즈 효과란 거대한 질량을 가진 천체 주변에서 빛의 경로가 휘는 현상으로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이론이 예측한 현상입니다. 강착원반이란 블랙홀 주변에서 물질이 회전하며 형성되는 원반구조를 뜻합니다. 2019년 사건지평선 망원경(EHT) 프로젝트가 실제 블랙홀 이미지를 최초 공개했을 때, 인터스텔라의 묘사와 형태가 상당히 유사해 화제가 됐습니다(출처: NASA).
반면 웜홀(Wormhole)은 다소 다릅니다. 웜홀이란 시공간을 가로지르는 지름길 개념으로, 아인슈타인-로젠 다리(Einstein-Rosen Bridge)라고도 불립니다. 이론적으로는 가능성이 열려 있지만, 현재까지 실제 존재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고, 영화처럼 인위적으로 만들거나 통과할 수 있는지는 더욱 불투명합니다. 킵 손 교수가 1988년 발표한 논문에서 웜홀을 통한 항성 간 여행 가능성을 이론적으로 다뤘지만, 그것이 곧 실현 가능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가장 논쟁적인 것은 테서랙트 장면입니다. 5차원 공간에서 4차원 시간을 물리적으로 조작한다는 발상은 솔직히 판타지와 경계가 모호합니다. 이에 대해 양자 중력(Quantum Gravity), 즉 양자역학과 일반 상대성이론을 통합하려는 이론 물리학의 핵심 과제가 언급되는데, 양자 중력이란 극소 영역에서 중력을 양자역학적으로 기술하려는 시도이며 아직 완성된 이론이 없습니다. 초끈 이론 같은 연구가 관련돼 있지만, 현재 기술로는 검증 자체가 불가능한 영역입니다(출처: CERN).
감정구조, 이 영화가 유독 마음에 걸리는 이유
일반적으로 인터스텔라는 딸바보 아버지의 사랑을 다룬 따뜻한 영화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느낀 건 좀 달랐습니다. 쿠퍼가 23년치 영상 메시지를 한꺼번에 보는 장면, 아이들이 자라고 늙고 결국 아버지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는 걸 화면으로만 지켜보는 그 표정 앞에서, 설정이 어쩌고 물리학이 어쩌고 따지던 머리가 완전히 꺼졌습니다.
돌아보면 이 영화가 유독 마음에 걸렸던 건 과학 때문이 아니라, 제가 미처 전하지 못한 말들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멀리 있는 사람한테, 혹은 이미 떠나보낸 사람한테. 쿠퍼처럼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면 저는 뭐라고 했을까, 하는 생각이 한동안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그런데 감정 구조를 냉정하게 들여다보면 아쉬운 부분도 있습니다. 브랜드 교수(Brand)의 배신이나 만 박사(Mann)의 광기는 납득 가능한 깊이로 쌓이기보다 전개를 위해 급조된 느낌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특히 만 박사가 왜 그 정도로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 했는지 영화 안에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습니다. 놀란 감독이 개봉 전 프리퀄 코믹스를 통해 만 박사가 겪었을 고독을 표현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영화 본편만 보고 그 행동에 공감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결국 인터스텔라의 감정적 힘은 아버지와 딸이라는 단 하나의 축에서 나옵니다. 그게 강력하게 작동하기 때문에 나머지 허점들이 상당 부분 덮입니다. 그것이 이 영화의 전략이자, 동시에 한계이기도 합니다.
정리하면, 인터스텔라는 과학적으로 완벽한 영화가 아닙니다. 그런데 그 허점을 알고 나서도 다시 보게 되는 영화입니다. 과학이 설명하지 못한 부분을 감정이 채우는 구조인데, 저는 그게 오히려 솔직하다고 느꼈습니다. 과학 이론에 더 깊이 파고들고 싶다면 킵 손 교수의 저서 인터스텔라의 과학을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영화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어디까지가 이론이고 어디서부터 상상인지를 훨씬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