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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긴어게인 [ 뉴욕, 감각, 음악 ] 추천영화

by mini3746 2026. 4. 11.

비긴어게인 포스터

음악 영화라고 하면 화려한 무대와 웅장한 사운드를 먼저 떠올리는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 기대를 조용히 배반합니다. 저에겐 비긴어게인 영화는 보고 나서 한동안 감성에 젖어 앉아 있었던 몇 안 되는 영화 중 하나입니다. 음악을 사랑하시는 분들이라면 꼭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뉴욕 골목이 스튜디오가 되다

영화의 핵심 설정은 단순합니다. 레이블 지원도 없고, 제대로 된 녹음 공간도 없는 두 사람이 뉴욕 곳곳에서 앨범을 만들어낸다는 것. 아이들이 뛰노는 뒷골목, 호수 위 보트, 지하철 역사까지 전부 녹음 공간이 됩니다. 영화 속 댄은 도시의 소음을 제거해야 할 방해 요소가 아니라 오히려 음악의 일부로 끌어들입니다. 도시의 소음이 반주가 되고, 우연히 지나치는 사람들의 발소리가 리듬이 되는 방식입니다. 가장 놀랐던 건, 그게 단순한 연출 아이디어가 아니라 실제로 음악이 살아있게 들린다는 점이었습니다. 허름한 바에서 혼자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그레타의 목소리를 처음 듣는 순간, 댄의 귀에 피아노, 드럼, 첼로가 겹쳐 들리며 잃었던 프로듀서의 감각이 깨어나는 장면은 이 영화 전체를 볼 이유로 충분합니다. 다만 솔직히 말하면 현실적인 부분에서 살짝 배신당한 기분도 있었습니다. 레이블 지원 없이 뉴욕 한복판에서 야외 녹음을 강행한다는 설정은 현실이라면 저작권 문제나 공간 사용 허가 등 복잡한 법적 절차가 얽히기 마련인데, 영화에서 그 부분은 경찰에 쫓겨 도망가는 유쾌한 해프닝 정도로만 처리됩니다. 야외 녹음의 감각은 분명히 살아있는데, 그 감각을 가능하게 만드는 현실의 무게가 너무 가볍게 처리된 점이 보는 내내 조금씩 걸렸습니다.

다시 시작이라는 감각

영화를 보고 나서 그날 밤, 실제로 이어폰을 꽂고 동네를 한 바퀴 걸었습니다. 그레타가 댄과 이어폰을 나눠 끼고 뉴욕 밤거리를 걷는 장면을 보고 나서 그냥 그러고 싶어졌습니다. 별것도 아닌데 기분이 달랐습니다. 영화가 끝난 뒤 곧바로 사운드트랙 전곡을 플레이리스트에 넣었고, 지금도 종종 꺼내 듣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가 저한테 더 깊이 닿은 건 사실 음악보다 다른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바로 '다시 시작'이라는 감각입니다. 한때 상을 받을 만큼 잘나가던 프로듀서가 연속된 실패와 동업자와의 갈등으로 해고까지 당한 뒤, 술잔을 기울이며 무의미하게 하루를 보내는 댄의 모습이 음악인이 아닌 제 눈에도 너무 선명하게 들어왔습니다. 뭔가를 한동안 놓고 살았던 사람이라면 분명 어딘가 한 번쯤은 찔릴 장면들입니다. 캐릭터 설계 측면에서는 분명 아쉬운 부분도 있습니다. 그레타의 전 남자친구 데이브는 상업적 성공에 물든 뮤지션으로 그려지는데, 그 변화 과정이 너무 단선적으로 처리됩니다. 상업성과 진정성 사이에서 갈등하는 복잡한 인간이라기보다 그냥 나쁜 남자친구로만 소비되는 느낌입니다. 댄과 그레타의 관계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아쉽습니다. 둘 사이에 감정적 긴장감이 분명히 존재하는데, 영화는 그걸 끝까지 매듭짓지 않고 흐지부지 넘어갑니다. 관계의 깊이를 충분히 만들어 놓고 결말에서 슬쩍 피해간 느낌이랄까요. 이걸 여운으로 받아들이는 분들도 있겠지만, 저는 이 경우엔 그냥 마무리가 덜 됐다고 느꼈습니다.

음악이 건드린 것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의 힘 자체는 끝내 부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음악 감상과 연주 활동은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를 낮추고 도파민 분비를 촉진하는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영화 속에서 댄이 그레타의 노래를 통해 잃었던 감각을 되찾고, 소원했던 딸과의 관계를 회복하며, 아내와도 이전의 감정을 되찾는 과정이 단순한 서사 장치가 아니라 실제 심리적 메커니즘과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웠습니다. 또한 영화 속 그레타가 레이블 계약 없이 직접 음원을 유통하는 방식은 현재 음악 스트리밍 생태계와도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독립 아티스트의 비중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지금, 그레타의 선택이 영화 속에서는 낭만적 도전처럼 보였다면 지금은 꽤 현실적인 경로가 되었다는 점도 새삼 흥미롭습니다. 음악 영화로서 비긴 어게인이 완벽하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그렇지 않다고 답할 겁니다. 이야기의 빈틈이 분명히 있고, 캐릭터의 깊이가 아쉬운 부분도 있습니다. 좋은 음악이 서사의 구멍까지 다 메워줄 거라는 기대는 조금 배신당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영화를 인생 음악 영화 목록에 올려두게 된 건, 결국 '다시 시작'이라는 감각을 이렇게 조용하고 담백하게 담아낸 영화가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한동안 놓아두었던 무언가가 있다면, 이 영화를 보고 난 뒤 그걸 다시 꺼내보고 싶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게 음악이든, 아니든.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JhwgXqt_k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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