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절 때마다 개봉하는 한국 코미디 영화, 솔직히 기대하고 보러 가시는 분이 얼마나 될까요. 저도 그랬습니다. 2019년 설 연휴, 극한직업이라는 제목과 치킨집 배경의 예고편을 보면서 '또 뻔한 거 아닌가' 싶었거든요. 근데 극장을 나오면서 든 생각은 달랐습니다. 오랜만에 옆 사람 눈치 안 보고 크게 웃어봤다는 것. 그리고 동시에 "그래서?"라는 물음도 함께였습니다.
치킨집 잠복이 웃긴 이유, 상황 자체가 코미디
혹시 억지로 웃기려는 영화와, 상황 자체가 웃긴 영화의 차이를 느껴보신 적 있으신가요. 극한직업은 확실히 후자였습니다. 마약 범죄 조직의 아지트 인근에 위장 잠입하기 위해 치킨집을 인수한 형사들이, 의도와 달리 장사가 대박 나버리는 설정. 이 아이디어 하나가 영화 전체의 엔진 역할을 합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 가장 웃겼던 장면은 류승룡이 진지한 얼굴로 치킨 양념 배합을 고민하는 부분이었습니다. 범인을 잡아야 하는데 왜 최선을 다해 장사를 하고 있냐는 황당함, 그게 너무 자연스럽게 흘러가니까 웃음이 터지는 겁니다. 관객 입장에서는 숨이 넘어갈 것 같다는 표현이 딱 맞았습니다.
이병헌 감독의 연출 방식을 영화 용어로 말하자면 장르적 컨벤션(genre convention)을 의도적으로 비틀는 접근입니다. 여기서 장르적 컨벤션이란 특정 장르에서 관객이 으레 기대하는 공식적인 설정과 전개 방식을 의미합니다. 범죄 추격물에서 관객은 긴장감과 위기감을 기대하는데, 이 영화는 그 기대를 치킨 장사라는 일상적 소재로 배반합니다. 그 배반이 웃음이 됩니다.
이 코미디의 완성도를 높이는 요소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수사라는 목적과 장사라는 결과 사이의 구조적 아이러니
- 진지한 얼굴로 우스운 행동을 하는 캐릭터들의 온도 차
- 억지 감동이나 가족애 삽입 없이 웃음 그 자체에 집중한 편집
장르의 공식을 비트는 코미디 연출 방식은 이병헌 감독이 이전 작품에서도 일관되게 보여온 스타일입니다. 흥행 요소에 따라 방향을 바꾸지 않고 자기 코드를 밀어붙이는 방식이죠. 그게 맞는 관객에게는 박장대소가 되고, 맞지 않는 관객에게는 개연성이 부족하다는 불만이 됩니다. 저는 솔직히 두 감정을 동시에 경험했습니다.
캐릭터 분석, 5인의 역할이 따로 또 같이 작동
캐릭터가 많은 영화에서 가장 흔한 실패는 뭘까요. 주연 한두 명만 살고 나머지는 배경이 되는 겁니다. 극한직업은 이 지점에서 꽤 잘 설계된 영화입니다. 5명의 마약반 형사가 각자 다른 웃음 코드를 담당하면서도 하나의 팀으로 자연스럽게 묶입니다.
류승룡이 연기한 고반장은 팀을 위해 퇴직금까지 끌어다 쓰는 인물입니다. 가정에서는 몇 년째 승진 못 하는 골칫덩이로 묘사되지만, 동료를 버리지 않는 전형적인 '반장'의 무게감이 있습니다. 이하늬가 연기한 장형사는 기존의 수동적인 여형사 이미지를 탈피해서, 날이 서 있으면서도 현장에 찌든 30년 차 같은 말투를 구사합니다. 제 경험상 이 캐릭터가 없었다면 팀 전체의 무게 중심이 류승룡 한쪽으로 쏠렸을 겁니다.
진선규가 연기한 마형사는 캐릭터 설계의 묘미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목소리를 낮게 깔고 굉장한 뭔가를 보여줄 것처럼 각을 잡아 놓고, 결정적인 순간에 허당 끼를 발동합니다. 이처럼 외형과 실제 행동 사이의 낙차를 이용한 코미디 기법을 페르소나 코미디(persona comedy)라고 부릅니다. 페르소나 코미디란 캐릭터가 자신을 특정 이미지로 제시하지만 실제 행동이 그와 반대로 가면서 웃음을 만드는 방식입니다.
공명이 연기한 막내 재우는 얼핏 비주얼용 캐릭터처럼 보였습니다. 솔직히 처음엔 저도 그렇게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코미디 라인에서 결정적인 순간 제 역할을 해내면서 팀 케미스트리(team chemistry)를 완성합니다. 여기서 케미스트리란 배우 또는 캐릭터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조화와 반응감을 의미합니다. 이 다섯 명의 조합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후속작 이야기가 나왔을 때도 충분히 납득이 됐습니다.
다만 솔직하게 짚어야 할 부분도 있습니다. 캐릭터들이 각자 개성은 있지만 결국 웃음을 위한 도구로 수렴되는 느낌이 남습니다. 개별 인물로서 더 깊이 들어가지 않고 웃음 기능에 최적화되어 있다는 점이죠. 이 부분은 장르적 선택이기도 하지만, 영화관을 나오면서 '그래서?' 하는 물음이 든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흥행 요인, 1,626만 명이 본 영화의 구조
극한직업은 최종 누적 관객 수 1,626만 명을 기록하며 한국 역대 박스오피스 2위에 오른 영화입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설 연휴 개봉 4일 차에 300만 관객을 돌파했고, 손익분기점을 가뿐히 넘겼습니다. 이 숫자를 두고 "많이 봤다고 잘 만든 영화냐"는 질문을 던지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조금 다르게 봅니다.
흥행 요인의 핵심은 진입 장벽 설계에 있었습니다. 영화는 15세 관람가 등급을 받았고, 마약과 범죄를 다루면서도 폭력 수위를 12세 수준으로 조절했습니다. 관람 등급(film rating)이란 영화의 내용이 특정 연령층에게 적합한지를 기준으로 분류하는 제도입니다. 가족 단위 관객이 함께 볼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명절 시즌 최대 수요를 흡수한 것이죠.
또한 수원왕갈비통닭이라는 실존 메뉴가 영화를 통해 입소문을 타면서, 영화 바깥에서도 화제를 이어갔습니다. 저도 영화 보고 나서 집에서 수원왕갈비통닭을 시켜먹어봤는데, 영화 속 장면이 겹쳐지면서 혼자 피식하게 되더라고요. 이처럼 콘텐츠와 현실 소비가 연결되는 방식은 마케팅 용어로 크로스오버 효과(crossover effect)라고 부릅니다. 크로스오버 효과란 미디어 콘텐츠가 실제 소비 행동이나 트렌드에 영향을 주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한국영화산업 전반의 흐름에서도 이 작품은 의미 있는 지점을 남겼습니다. 2019년 한국 영화 산업 규모 관련 데이터에 따르면, 명절 시즌 한국 영화 관객 집중도가 전체 연간 관객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극한직업은 그 구조 안에서 가장 효율적인 선택들을 한 영화였습니다.
극한직업을 두고 저는 여전히 복잡한 마음입니다. 영화관 안에서는 분명히 즐거웠고, 류승룡의 진지한 치킨 장인 연기는 지금도 떠올리면 피식해집니다. 다만 악당의 무게감이 너무 가볍고, 마약 범죄라는 소재에 비해 긴장감이 거의 없다는 점은 코미디를 위한 의도적 선택이라 해도 아쉬움이 남습니다. 생각 없이 크게 웃고 싶다면 지금 봐도 충분히 유효한 영화입니다. 단, 범죄 스릴러의 묵직함을 기대하고 앉으신다면 다른 영화를 선택하시는 편이 나을 겁니다.